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도하의 기적 (문단 편집) ===== 구국의 영웅, [[움란 자파르]] ===== 이 당시 극적인 헤딩 골을 넣었던 이라크의 선수는 스트라이커였던 [[움란 자파르]] 선수였다.[* 한국에선 당시 자료 접근 경로가 부족한 탓인지는 몰라도 수비수로 기억하는 사람이 많다. 그런 고로 언론에서도 수비수로 표기하는 경우가 잦지만 그의 포지션은 공격수가 맞다. 참고로 이 자파르 선수가 앞서 2라운드로 열린 대한민국 전에서 경기 막판 동점 골을 넣었던 선수라고 잘못 알려져 있기도 하지만 [[대한민국]]을 상대로 골을 넣은 선수는 [[하비브 자파르]] 선수였다.] 이튿날, 주한 [[이라크]] 대사관에는 축구팬들에게서 온 감사 전화가 폭주했다. 이 당시는 [[걸프전]]이 일어난 지 얼마 안 되어 국제사회에서 [[이라크]]의 이미지가 매우 형편없던 시절이라 당시 주한 이라크 대사관에서는 [[윤봉길|'''"이라크 정부가 몇 년을 노력해도 되지 못했던 것을 단 한 순간에 해냈다."''']]고 극찬했다. 움란 자파르 선수는 훗날 [[대한민국]]으로 초대되어 '''영웅'''으로[* 실제 당시 언론이 썼던 표현이다.] 환대를 받았으며, [[대한축구협회]]에서는 감사의 표시로 [[이라크]] 축구 선수들에게 유니폼, 축구공, 축구화 등 여러 가지 장비들을 지원했다. 또한 그는 '''"[[K리그]]에 진출하고 싶다."'''는 의사를 나타내기도 했으나, 성사되지는 못했다. 그래도 이후 이라크 선수들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, 결국 96년 [[안양 LG 치타스]]가 [[아바스 오베이드 자심]]과 [[사디크 사둔 압둘리다]]를 영입하였다. 이 중 자심은 [[안양 LG 치타스]]와 [[포항 스틸러스]]를 거치며 2001년까지 5년 간 준수한 활약을 했고, 이라크 선수가 K리그에서도 나름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. 당시 인터뷰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다. >국내 팬들은 물론, 현장에서 직접 뛴 나 자신도 이 대회는 일본과 사우디아라비아 등 부국들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고 느꼈다. 심지어, 뇌물 공여나 심판 매수를 했다는 의구심이 들었다. 이라크는 이 같은 경기 외적인 요인 때문에 희생양이 됐다고 생각한다. 이라크의 명예를 전 세계에 알릴 수 있다면 승패에 관계없이 최선을 다한다는 각오로 경기에 임했으며, 우리가 본선 진출의 가능성이 희박해진 후에도 마지막까지 열심히 뛴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. 이 때문에 이라크 선수들은 움란 자파르의 동점골 이후에도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. 오히려 골대 안으로 들어가서 그물에 걸린 공을 주워 들며 덤덤하게 센터서클 쪽으로 가져갔다.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것이, 이 시점에서 이라크가 본선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최소 다섯 점 차 이상으로 일본을 이겼어야만 했다.[* 물론 한국이 이긴다는 전제 하에. 만약 ~~열뻗치게~~ 북한이 한국을 잡았다면? 점수 상관 없이 이기면 이라크가 진출했다.] 이라크 처지에서는 동점이 되었다고 하더라도, 무승부나 패하는 것이나 딱히 큰 의미가 없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. 1993년 당시 [[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]]의 코치로 있었던 [[야흐야 만헬]] 감독은 2006년부터 [[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]] 감독으로 선임되었는데, 대한민국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도하의 기적을 추억하면서, '''"그때는 [[대한민국]]보다 [[북한]]이 너무 약했다."'''고 평가했고[* 하지만 이라크의 유일한 패배이자 북한의 유일한 승리가 이라크-북한 경기였다. 한국과 무승부를 거두고 북한에 패배했음에도 북한이 더 약하다고 평가하는 것이 어찌 보면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. 만일 북한을 이기고 2승 3무를 달성했다면 사우디와 함께 이라크가 월드컵에 갔을 것이다.], '''"1993년 당시, [[일본]] 선수들이 비긴 후 그라운드에 쓰러져서 펑펑 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."'''라고 말했다. 그리고 경기가 끝난 후, [[대한민국]] 팀이 머물던 호텔로 가서 '''"자신이 이라크 국가대표 코치다."'''라고 했더니 대한민국 선수들이 서로 껴안으며 고맙다고 환호해 주었다는 이야기를 했다. [[https://news.joins.com/article/2533395|링크]] 한편, 이라크의 첫 번째 골을 넣었던 선수는 바로 '''[[2015년 AFC 아시안컵]]에서 [[이라크 축구 국가대표팀]]의 감독을 역임했던 [[라흐디 세나이실]]이다.''' 당시 대회 4강전인 대한민국과 이라크의 경기 하루 전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라흐디 세나이실 감독은 기자에게 "[[도하의 비극]]을 기억하느냐?"라는 질문을 받자, "물론 똑똑히 기억한다. 내게도 인상 깊은 경기였다."라며 "그 때 일본에 미우라, 라모스, 곱슬머리 선수(기타자와) 등이 있었던 게 생각난다. 나카야마의 골은 굉장히 강력했다."라고 대답했다. [[http://news.chosun.com/site/data/html_dir/2015/01/16/2015011602757.html|#]]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